18년 전부터 해오던 언러닝(unlearning)

오늘 곽백수 작가의 ‘가우스 전자‘에서 등장한 ‘unle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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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전자 시즌4 30화 언러닝 발췌

 

오오오 이것이야말로 내가 18년 전부터 해오던 바로 그것 아닌가. 무엇을 시작하든 제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던 바로 그…! 심지어 1년에 기획서 100개를 쓰던 시절 조차 과거 기획서 한 번 들춰보지 않고 썼던 바로 그…! 드디어, 20여 년만에 내가 해오던 방식이 재조명 받는 것인가…! 라는 감개무량, 을 뒤로 하고 그동안 ‘내가 한 일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설움을 겪었던 일들이 많이 떠오른다.

의도적 망각, 아마도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불리우지 않을까 싶어서 구글링 해보는데 안나온다. ‘intentional oblivion’. 중 2 스럽고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왜 아무것도 안걸리지. 나라도 써서 블로그 이름을 이걸로 바꿀까도 싶다.

내가 한 일을 의도적으로 기억하지 않는 것은, 같은 일을 반복할 때마다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내어 할 수 있게 만든다. 만약 그게 단순 작업일 경우에는 최대한 매크로화 하든지 매뉴얼화 하여 머리를 쓰지 않고도 할 수 있게 해두든지 한다.

이 방법의 장점은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일을 할 수 있다’ 이고 단점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에너지가 많이 든다’ 이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는 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억 따라서 하나 제로부터 생각해서 하나 큰 차이가 없었고, 대부분의 경우에 제로부터 생각해서 해도, 전체를 구상하는 초반에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 본격적으로 진행을 시작하면 훨씬 더 빠른 경우가 많았다. 경험과 기억도 어차피 완전하지 않은 것이라, 완전치 못한 길잡이를 믿고 따르기 보다는 처음부터 만드는 편이, 복잡한 업무일수록 더 낫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다. 위에서 쓴 것과 같이 과거의 경험을 이용하려면 철저하게 매뉴얼화 해두는 게 낫다. 그런데 이게 나이가 들고 에너지가 줄어들수록 속도가 늦어지기 시작하더라. 그러다보니 요새는 어느 정도 과거의 경험을 참고하여 시작하기도 한다. 너무 제로부터 하니까 힘들더라……

단점은 또 하나 있다. 사람이 그리 똑똑해보이지 않는다. 자기가 해온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멍청해 보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생각해보라 당신네 서비스 초기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라며 물어오는 거래처 중역에게 ‘제가 예전 일들은 잘 잊어버리는 편이라서요…’ 라고 말하는 나의 모습을. 그래서인지 움베르토 에코는 ‘기억력이 좋으면 사람이 똑똑해보이는 효과가 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꽤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이 요즘의 나는 기력쇠퇴와 게으름으로 인하여 적당히 과거를 참고하며 매번 새롭게 일을하는 아주 조화로운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이 문장 쓰다보니 이렇게 조화롭게 잘 일하고 있는데 왜 이런 고생을 하며 사나… 라는 자괴감이 드네;;;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오늘 우연히 발견한 예전에 저장해놓은 짤을 올리며 마무리. (예전의 나는 어째서 이런 짤을 저장해둔걸까 예언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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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곽백수 작가의 ‘가우스 전자’ 보러 가십시다.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75554&no=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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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골든슬럼버 – 이사카 코타로에 대하여

수십년만에 정권을 잡은 야당의 총리가 살해당하고 느닷없이 범인으로 지목당한  청년의 이야기. 때깔좋은 강동원 주연의 영화도 나온 마당에 대표작을 안읽어서야… 라고 생각하여 이번에 읽었다. (그래서 상단 이미지는 때깔 좋은 강동원)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이사카 코타로 소설을 좋아하여 그의 소설을 계속 읽고 있는데, 2007년에 발표된 이 소설도 그의 특징이 드러나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지금까지 읽은 그의 소설은 아래의 다섯 권이고,

  • 마왕
  • 그래스호퍼 (살인청부업자 시리즈 1)
  • 마리아비틀 (살인청부업자 시리즈 2)
  • AX (살인청부업자 시리즈 3)
  • 골든슬럼버

그 소설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1. 1인칭 시점
전체 사건이 존재하고, 그 사건 안의 인물들의 1인칭 시점으로 구성되어 전체를 맞춰 나간다. 각 챕터의 타이틀이 등장인물의 이름이고, 그 챕터는 철저하게 그 인물의 시점에서 구성된다. 인물간 시점 전환의 기교가 점점 세련되어져서, 최신작인 AX에서는 ‘과연 이번에는 어떤 시점 전환을 보여줄까’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커다란 반전을 보여주는 구성이기도 하다. (직접 확인하시라)
이번에 읽은 ‘골든슬럼버’에서도 누명을 쓴 도망자 ‘아오야기’ 는 3부가 시작되고 나서 한참 뒤에야 나온다. 1인칭 시점과 1인칭 시점이 얽혀 전체의 커다란 얼개를 맞춰나가는 전개는 이 매체가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구성이다. ‘누명을 쓴 도망자’라는 오래된 클리셰를 끝까지 긴장감있고 흥미진진한게 풀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구성과 섬세한 글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 알레고리
이 소설의 제목 ‘골든슬럼버’는 비틀즈의 사실상 마지막 앨범 Abbey Road의 수록곡이다. 모두가 제갈길을 가고 있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곡, 이라는 의미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의 삶의 알레고리로 변주된다.
내가 읽은 그의 또다른 소설 ‘살인청부업자 시리즈’는 제목부터 계속 ‘곤충’을 메타포로 쓰고 있다. 메뚜기(그래스호퍼), 무당벌레(마리아비틀), 사마귀(AX)는 각 소설의 주인공을 상징하고 각각의 의미를 풀어가고 있다.

#3. 여러개의 축
극을 이끌어가는 ‘사건’이 존재하지만, 그 사건과는 별개로 등장인물들간의 감정적 유대가 또다른 축이 된다.
골든슬럼버의 경우에는 누명쓴 도망자 – 청춘을 함께 불태운 친구들의 우정이라는 축을 기반으로 ‘인간 최대의 무기는 OO이다’ 라는 축을 가지고 이 축에 기대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AX의 경우에는 최강 청부살인자의 일상이라는 축에 은퇴 시도와 가족애라는 축을 가지고 풀어 나간다.

#4. 한 번 나온 건 반드시 다시 나온다
극에서 지나치듯 묘사되는 사건, 인물, 배경 등은 반드시 다시 한 번 등장하는 복선이 된다. 처음에는 아하 그렇구나 싶었는데 요새는 이건 뒤에서 어떻게 쓰일까 하는 마음이 든다. 복선을 깔끔하게 회수하는 편이라 한 번 써먹은 걸 뒤에서 한 번 더 써먹는 구질구질한 구성이 없다는 것도 좋다. 이야기를 구성함에 있어서 복선을 반전을 위한 장치로만 심어두는 건 그리 좋지 않은 방법이지만, 써먹은 복선을 한 번 더 써먹으며 뒤집는 건 그야말로 최악이라 생각하는데,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에서의 복선은 단순히 사건의 반전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감정의 발화를 이끄는 도화선으로도 훌륭한 역할을 해낸다. 골든슬럼버의 마지막 장면이 그래서 무척 찡했다.

#5. 중립적인 가치관과 결국에는 선한쪽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에서는 사회 문제를 무척 많이 다루는 편인데, 비교적 초기 작품인 ‘마왕’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중립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높은 사람들은 결국에는 다 이권 때문에 움직이는 거야’ 라고 말하는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그런 장면 또한 1인칭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관찰하는 수준으로 그려진다.
이야기가 다루고 있는 사건과 인물들의 특성상 잔인하고 험악한 사건과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억울하게 죽는 선량한 사람들. 선량한 사람을 죽이는 등장인물들. 억울하게 당하는 주인공들이 계속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선한 사람이 잘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 거 아닐까하는 섬세한 배려가 깔려 있어서 잔인함을 극대화시키고 그것을 해소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얇팍한 소설들과는 선을 긋고 있다.

#6. 오락소설의 미덕에 충실하다
한 축에는 긴장감 넘치는 사건이 있고, 다른 한 축에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있고, 그 두 축을 인간의 유대와 감정의 교류로 연결하고 있는 소설들이지만, 이사카 코타로는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이 ‘오락소설’의 범주를 넘지 않도록 잘 조율하고 있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초능력이 나온다든지 어둠의 세계의 인물들이 나온다든지하는 것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의미로) 오락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고, 작가 또한 그 범주를 무리하여 넘으려고 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은 쉬운 길로 가지 않는다. 자극적인 글쓰기로 쾌감을 유도하지도 않는다.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생각을 받아들이라며 독자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단한 야심과 기획을 가지고 쓰지만 등장인물과 독자를 섬세하게 배려한다. 이런 부분들이 민감한 소재들을 건드리면서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게 만든 요소들이라 생각한다.

‘골든슬럼버’ 또한 ‘서점 대상’, ‘야마모토 슈고로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1위 등을 수상한 작품으로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라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은데, 뭐라고 쓰면 언젠가 읽을 분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아무 말도 쓰지 못하겠다. 아직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언젠가 그 작품을 읽는데 방해되지 않는 리뷰를 쓴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어쨌거나,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적극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마왕’의 등장인물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서 무척 좋아하므로, ‘마왕’부터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족.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이사카 코타로 소설에는 나랑 비슷한 구석이 있는 주인공들이 나온다.
‘마왕’에서 빵터졌던 장면 하나.
주인공 ‘안도’는 회사선배 ‘미치코’와 술자리에서 “안도 너, 여자친구에게 ‘따지기 좋아한다’라고 듣지 않아?” 라고 질문 받는다. 안도가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에게 그런 말 들은 적 있어요.” 라고 대답하자, 미치코는 “앞으로 사귀게 될 여자에게도 들을 거야” 라고 말한다.

이거 졸라 나다, 라고 무릎을 치며 읽었던 장면.

또 다른 소설 ‘마리아비틀’에서는 ‘지독하게 운이 없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아 이거 나다, 라고 생각했고 ‘AX’의 주인공은 최강 살인자이지만, 엄청난 공처가인데 이게 또 나랑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ㅎ

3월 22일의 뻘소리 – 어제는 눈이 왔다

# 근황
페이스북에 잘 들어가지 않고 있다. 가끔 올리는 기사들도 외부에서 ‘페이스북으로 공유’를 눌러서 거기에 입력하는 경우가 대부분. 대신 인스타그램을 쓰고 있다. 문장이 점점 망가지고 있는 중년에게는 사진 한 장에 간단한 설명으로 그럴듯한 포스팅을 완성할 수 있는 이 서비스가 반갑다. 가끔은 즐거운 내용에 재치있는 문장의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언감생심,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책
한동안, 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소설 위주로 읽고 있다. 삶이 팍팍하고 힘드니까 문자라도 편한 거 읽자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 눈
내가 태어나던 날(3월 초순)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어머니로부터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는데 올해는 뭔가 저 문장에 의미가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봄이 오고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3월에 아직 미련이 남은 겨울이 심통 부리는 것처럼 내리는 눈.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이다!’ 라고 맘 먹는다고 어제까지의 모든 것과 다른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3월에 눈이 오는 건 좀 뜬금없는 것 같다 생각 했다. 어제 내리는 눈에 감탄하고 즐거워하며.

# 프리큐어
눈이 펑펑 내렸던 어제는 춘분이라 쉬는 날이었고,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프리큐어 슈퍼스타즈‘ 를. 어린이가 굳이 어제 보셔야겠다 하여, 엄마를 두고 둘이서 보러 갔다. ‘마법사 프리큐어'(2016), ‘반짝반짝 프리큐어 아라모드'(2017), ‘HUG, 프리큐어'(2018)의 3작품의 주인공들이 나오는 프리큐어 극장판이다. ‘파워레인저’나 ‘가면라이더’처럼 1년마다 새로운 프리큐어 시리즈가 시작되고, 극장판은 대체로 1년에 두 번 개봉한다.
영화 입장 시에, 누르면 연두색 빛이 나는 작은 마법봉(아래 그림 참조)을 나눠준다. 그리고 중간 중간 주인공들이 위기체 처했을 때, 바람잡이 캐릭터 – 애완동물 사이즈의 괴생물. 보통 개나 햄스터나 그런 것과 비슷하게 생김 – 가 “너희들희 힘을 빌려줘! 빛을 켜고 좌우로 흔들어줘!” 라든지 “더 힘차게!”라며 어린이들의 참여를 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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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걸 나눠준다. 의외로 빛이 예쁘고 오래간다.

# 복잡미묘
윗 글에 이어서. 여기서 어린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내가 힘을 줄게!!!’ 라며 적극적으로 휘두르는 어린이와 ‘어차피 저거 이미 만들어진 거 화면으로 틀 뿐인데 내가 저 장단에 맞춰야 하나’ 라며 시니컬하게 있는 어린이의 두 부류로 나뉜다, 고 생각했었다. 우리집 어린이를 보기 전까지는.

“너희들의 힘을 빌려줘!!!” 라고 영화 속 캐릭터가 외칠 때 우리집 어린이의 반응은

‘으음… 안하자니 다른 애들 다 하는데 나만 안하는 것도 민망하고, 하자니 부질없는 짓 영화 만든 인간들의 얄팍한 농간에 놀아나는 것 같고…’
혹은,
‘으음… 저거 어차피 만들어진 거 여기 틀어놓을 뿐인데… 별 의미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왠지 하고 싶다. 이렇게까지 멍석 깔아주는데… 왠지 나도 불 켜고 흔들고 싶다…’

 

와 같은 상당히 미묘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반응을 보이던 어린이는, 타협안으로 ‘불을 켜고 아주 작게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흔들되, 그 모습을 남들이 보지 못하게 가리기’ 라는 특이한 행동을 선택하였다.

# 고유명사를 제대로 말하기
위의 어린이 에피소드와 비슷한 일화가 내 인생에는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나는 ‘과자 이름을 제대로 말하는 게 민망하고 창피하게 느껴져서 말하지 않는’ 편이다. 과자 이름이 뭐가 그리도 민망한지… 보통명사급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육성으로 읊지 않는 편이다. 아빠부터 이러니 딸이 저런 것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 어린이
요즘 어린이가 점점 예뻐지고 있다, 고 생각하고 있다. 막 혼자 어린이가 예쁘게 크는 뻘상상 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러고 있다. 그런 한 편, 아기같은 모습이 점점 없어지는 모습을 보며 아쉽고 서운하고 그런 맘도 크다. 문장으로 써놓고 보니까 여기 저기서 백 번 정도 봤지만 전혀 공감도 안되고 감흥도 없던 바로 그 문장이구나. 부모라면 누구나 다 (크게) 느끼는 마음이지만, 부모가 아닌 사람은 백 번을 보든 이 백번을 보든 아무 감흥없는 바로 그 문장ㅎㅎ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라고 이제서야 이해하게 된다. 사회화가 조금 많이 (많이) 늦은 감도 있지만 이것 또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잡담] 슬램덩크는 좋고 원피스는 흥미없는 이유

원피스: 1-31권. 누계 9055.6만부 (출판지표연보 2004)
슬램덩크: 전 31권. 누계 9300만부 (닛케이엔터테인먼트 2000년 7월호)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원피스 슬램덩크 어떤 게 더 재미있나’라는 쓰레드를 보면, 원피스와 슬램덩크의 31권까지의 판매부수가 나와있다. 의외로(!) 31권까지만 본다면, 현재 스코어 지구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 원피스보다 슬램덩크가 더 많이 팔렸다. 출처가 다르니 100% 신뢰하지 않는다고 해도, 거의 비슷하게 팔렸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슬램덩크를 무척 좋아하지만, 원피스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는 슬램덩크는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원피스는 한 때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가 될 것 같다.

그 이유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 전개, 작위적인 카타르시스, 자기복제를 반복하는 갈등 구조 등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캐릭터를 다루는 두 작품의 차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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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의 이유들은 슬램덩크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점들이다.  “난 지금입니다!!” 이건 감동받으라고 만든 구성과 대사이고, 우리는 이 대사에 열광했다.

 

내가 슬램덩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정대만! 불꽃남자!
중학교 전국 MVP였지만 방황에 빠져 저질 체력으로 고생하는 인간미 넘치는 천재!!

반면, 원피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조로다.
웬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루피 등과는 달리 먹을 것도 그리 밝히지 않고 세상 달관한듯 잠을 자는 쿨하지만 뜨거운 남자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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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좀 보내면 머리에 두건만 쓰면 둘이 똑같이 생겼다 (클릭하면 출처로 감)

이 두 사연 많은 조연 캐릭터를, 두 작품은 전혀 다르게 다루고 있다.

슬램덩크에서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 때문에 토너먼트 경기를 이기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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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진짜남자의 슛은 림에 맞지 않고 깨끗히 들어간다

반면, 원피스의 조로는 언제나 적 두목의 졸개들과 싸운다.
가장 강력한 두목은 언제나 루피가 싸움 걸고, 얻어 터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두드려 패고, 훈계하고, 감동준다.
그동안 조로는 그 일파에서 두 번째로 센 놈과 싸워서, 얻어 터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두드려 패고, 루피를 구박한다.

이 패턴이 70권쯤 반복되니, ‘캐릭터를 팔고 있는’ 원피스라는 만화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언제나 조연같은 조연에 머무는 것이 짜증이 나게 되더라. 브레이킹 배드의 악덕(?) 변호사 ‘사울’도 자신의 이름을 딴 스핀오프 드라마가 3시즌째에 접어 드는 세상이라 자신있게 말하긴 어렵지만, 정대만이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건 작가도 독자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대만이나 조로와 같은 특정 캐릭터를 좋아하는 내가 바라는 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 캐릭터 다움을 드러내며,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어느새인가 조로는 루피가 싸우면 한주먹 거리도 안될 것 같은 악당들과 치고 받으며 뒤치닥거리를 하고 있다. 하다못해, 비슷한 롤을 가지고 있던 베지터처럼 언젠가 손오공카카로트을 죽이겠다거나, 가끔은 짧은 순간이라도 손오공카카로트보다 더 강해지거나 하는 장면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스토리의 전개보다 액션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 더 심각해진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3편 정도 보았더니, 조로라는 캐릭터를 내가 왜 좋아했나 의문이 들었을 정도였다.

반면 정대만은, 윤대협이나 이정환도 아니고 서태웅도 채치수도 아니지만, 어느 한순간에서는 가장 뜨겁고 강렬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앤디 워홀의 말처럼 적어도 어느 한순간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는 두 만화가 다르지 읺지만 (슬램덩크에서 각 멤버들을 영입하는 과정과 원피스에서 동료를 영입하는 과정이 무척 비슷하다) 그렇게 한 팀이되어 결국 졸개들만 상대한다는 한계가 원피스의 캐릭터들의 매력을 감소시킨다고 느낀다.

잘만들어진 캐릭터를 내세우는 만화는 독자의 감정이입이 쉬운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어서, 나같은 사람은 120% 몰입하여 ‘그래! 나는 포기하지 않는 남자지! 나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불꽃처럼 스러지는 남자지!’ 라며 즐거워하는데, 캐릭터를 내세워서 팔고 있는 만화에서 캐릭터에 한계를 느끼게 된 것, 이게 내가 원피스에 흥미를 잃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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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책상에는 정대만이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니까.

 

 

덧. 
여담이지만, 가끔 살짝 보게 되는 원피스의 캐릭터들은 감각적인 이미지가 더 먼저 들어오는 패션쇼의 모델같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특징있는 외모(그리고 소품), 특징적인 기술, 적당한 사연들로, 스마트폰 게임의 가챠를 돌리면 나올 것 같은 캐릭터들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 가챠 캐릭터들이 원피스의 캐릭터 제조법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편이 옳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결국 잘만들어진 스마트폰 게임의 캐릭터와 원피스의 각종 열매 능력자들이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그렇게 기획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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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의 삼분의 일은 허세
다른 삼분의 일은 자학
나머지 삼분의 일은 음담패설이었던
존경하는 예전 직장의 상사가 이야기했다.

PT 전날,
홀로 지새우는 새벽,
그 고독의 밤을 수백일 보내야
우리는 비로소 기획자가 된다고

아놔…

일이 안되어 폭주하는 내용의 포스팅

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데, 일은 안되고 몸은 힘들고, 에라 모르겠다 반쯤 폭주 상태가 된 나를 진정시키고자 전화기에 있는 사진을 아무거나 올리며 포스팅

나다움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현상에 대한 일본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1월호 아티클. 뭔가 애매하던 시기에 정신 차리게 해주었다.

맥도널드를 찾아 한참을 헤메이던 어느 점심에 찍은 하늘. 좋더라…

어딜 통 나가지 못해 회사 카페에서 사진이나 찍고 있던 즈음의 사진들. 요샌 점심도 잘 안먹고 있어서 더더욱 나가질 못하고 있다.

막 해체한 참치를 들고 와서 집에서 썰어 먹었던 날의 사진. 맛있고 좋았다.

최근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 ‘오키테가미 쿄우코의 비망록’ 각키는 백발을 해도 각키라는 걸 알려준 드라마. 방송 끝난지는 꽤 되었는데, 나는 주말에 청소하면서 한 편씩 보고 있어서 아직 다 못봤다. 결말이 무척 궁금하다는ㅋ

최근 들은 앨범 중 가장 훌륭한 훵크를 들려주었던 토키 아사코의 새앨범 Bittersweet. 결혼 축하해요~

아아 대충하고 자자…

2016년 소설 소원 연하장 Alex편 writen by 그럴껄

Alex가 JoyPal(조희팔 아님)을 설립했을 때,사람들은 ‘니가 엘런 머스크’인줄 아냐고 비아냥 거렸다.
그리고 조이팔로 번 모든 돈을 무인 오토바이 업체 버슬라(벗을라 발음 주의) 모터스에 투자한다고 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결국 제2의 김완선은 김완선을 넘을 수 없듯이 너도 결국에는 끝이 보인다며 그를 폄하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목표가 있었고, 다른 미래가 있었다.

그가 반쯤은 버려졌던 남해의 외나라도에서 유니버스X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기로 했을 때, 그리고 왕복 4년이 걸리는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 직접 자신이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그의 진심과 집념에 대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외나라도 유니버스X 스페이스쉽에 탑승하기 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목표란 무서운 것입니다. 좌절과 포기, 분노와 절망에서 저를 끄집어 낸 건 화성에 가겠다는 목표 단 하나였습니다. 저는 이제 꿈을 이루려 갑니다. 제 발걸음이 여러분들 목표의 증거가 되면 좋겠습니다.”

별탈없이 무사히 발사된 로켓 안.
7명의 승무원들이 안전하게 냉동수면캡슐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그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굵고 짧은 눈물을 훔쳐냈다.

“드디어 내 꿈이 실현되는구나!”
잠시 감격에 겨웠던 그는 탑승자들 아무도 모르게 적재해 놨던 플레이스테이션 8과 640개의 게임이 저장되어 있는 하드를 연결했다.

“이제 최소 4년은 마누라랑 애 간섭없이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어”
전원버튼을 누르는 그의 손이 살짝 떨렸다.
언챠티트11의 인트로 음악이 흘러 나오자 주체할 수 없는 자유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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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의 2016년 소원:
“미국에서 멋진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요! 저는 겸손하니까 주커버그만큼 잘되길 바라진 않아요. 그냥 소박하게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만 되어도 좋겠어요.”

소설 작성: 그럴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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