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esteem

나에게 있어 한국 사회는 ‘경쟁이 심한 사회’라는 이미지다.

경쟁이 심하다보니 이기기 위해선 더 치열함이 요구된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지만, 세상은 점점 각박해진다. 고속 성장의 시대마저 끝나니 이젠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경쟁’의 국면으로 접어들기까지 했다. 이젠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이미 ‘이기는 것’은 사치스러운 목표가 되었다)이 너무 중요해졌고, 경쟁은 치열함을 넘어 처절함으로 치닫는다.

이런 경쟁에서 몰염치나 반칙따윈 일상다반사다. 염치를 가지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규칙을 준수하며 살겠다는 것은 생존 레벨의 경쟁에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치가 된다. 이쯤되면 이기주의를 비난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다.

이게 내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더이상 우리들의 – 당신들의 이기주의와 몰염치와 반칙을 비난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가 – 모두가 어려운 사회.

이런 사회에서 스스로를 존중하고 산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나를 존중해줄 시간도 여유도 없다. 세상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나는 점점 불쌍해지고, 나도 못챙기는 마당에 내 가족까지 챙겨줄 정신은 더더욱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자존감을 느끼는 걸까. 우리 존재에 대한 예의를 어디서 느끼는 걸까.

요즘 드는 생각은 우리가 ‘소비 활동’에서 자존감이란 것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좋은 자동차나 유명 브랜드의 백은 스스로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존중받을 수 있게 해준다. 깨끗한 양심, 높은 도덕적 가치,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할 지혜, 이런 것들을 통해 사회에서 존중받는 것 보다 비싼 자동차나 유명 브랜드의 가방을 드는 것이 더 쉽고, 빠르고, 간단하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로 느껴진다. 내면의 가치를 존중받는 것보다 내가 사용한 돈의 가치로 존중받는 것이 더 ‘효율이 좋은’ 사회인 것이다. 나같이 둔한 사람이 이런 걸 느낀 지금은 이미, ‘비싼 것 = 좋은 것’이라는 공식이 의식의 영역에서 작동되는지 아니면 무의식 깊은 곳에서 작동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넓고 깊게 퍼져있는 것 같다.

우리는 왜 소비를 하며 행복(혹은 만족)을 느끼는 것일까. 다른 곳에서는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경쟁이 심한 사회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작은 것에서 (작은 사물, 사소한 행동, 짧은 시간 등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어려운 걸까. 불행한 우리가 이런 사회를 만든 것일까, 이런 사회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것일까. 질문은 끝이 없고, 나의 답도 장황해지기만 한다.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염치를 가지고 남을 배려하며 내면의 가치를 더 존중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것 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 서있는 이자리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벼움을 경계하고 허세와 싸우며,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을 찾아 고민하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은 당신의 – 나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친한 형의 말대로 언젠간 폭발할 이 폭탄돌리기에서 당신은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착각이 아니길 바랄 뿐이고, 진심으로 당신의 – 우리의 행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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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tain drop

지금이 몇 막인지 몇 장인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막이 끝나가고 있다, 고 느끼고 있다. 생활, 일, 꿈, 우정, 사랑, 가족. 기승전결로 예쁘게 구분 되어 사이 좋게 늘어서 있진 않지만, 일본으로 건너온지 이 년, 하나의 막이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막은 어떻게 끝날까, 다음 막은 어떤 내용으로 시작될까. 이번 막이 흐르는 동안 나는 잘 살았던 걸까. 후회하지 않을까, 돌이키고 싶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다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 되는 건 아닐까. 이번 막은, 이전 막과 다음 막 사이의 이야기가 맞는 걸까. 전혀 엉뚱한 생을 살았던 건 아닐까. 가을이 여름과 겨울의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번 막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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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버리러 갔다 오며 별 생각을 다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