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게임쇼 2014 단상

올해 도쿄 게임쇼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국가에서 많은 단체들이 참석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는 아직 도쿄 게임쇼가 끝난 것이 아니라서 아마 사람도 많이 왔을 것이다. 올해로 5년째 도쿄 게임쇼에 참석하고 있는데, 2009년 서구권의 어떤 미디어에서 보았던 그 짤방이 현실이 되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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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무슨 발표 자료 찾다가 본 이미지였는데 인상적이었다.

올해 도쿄 게임쇼는 컨퍼런스 위주로 다녀서 부스를 많이 보진 못했으나, 컨퍼런스는 세션별로 별도의 글을 작성하는 것으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전체적인 감상 위주로 정리하였다. (뻘소리지만 이 글을 완성하는 시점은 12월이 코앞인 11월이다. 아무리 늦어도 G-Star 하기 전에는 올리자 싶어서 자괴감 반 한탄 반 안고 부랴부랴 작성하여 올려본다)


대형 타이틀의 감소

대형 신작이 사라졌다. 이건 도쿄 게임쇼 뿐 아니라 일본 게임 업계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 기업이 2013년에 발매한 타이틀 중, 해외에서 크게 성공한 타이틀이 거의 없다. 닌텐도의 일부 프랜차이즈 게임과 포켓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정말 눈에 띄는 게 없다. 이는 해외 미디어에서도 그대로 보여졌는데, IGN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디어들이 도쿄 게임쇼에 대한 별도의 페이지를 만들지 않았다.(이들은 다른 게임쇼가 있을 때 -이를테면 PAX con같은-는 꼬박꼬박 별도 페이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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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일본 내 판매 순위. 닌텐도 게임 제외하면 딱히 뭐가 없다. 심지어 그 중 하나는 서양 게임. <출처: 패미통 게임 백서 2014>

그런 와중에도 주목을 받은 작품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Metal Gear Solid V Phantom Pain(이하 MGS V PP)나 Final Fantasy X/X-II(이하 FF)는 해외 미디어에서도 새로운 정보가 발표되는 즉시 업데이트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MGS V PS는 사실상 신작 발매 직전의 (유료) 체험판에 가깝고, FF X/X-II는 10년 전 발매되었던 타이틀의 리메이크라, 이런 타이틀이 가장 눈에 띈다는 점이 오히려 일본 제작사들의 빈약한 신작 라인업을 말해주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작년 일본내 판매량 Top 10 타이틀<그림1> 중 해외에서도 인기가 있는 타이틀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전부 일본인 취향’만’을 고려한 타이틀들이다) 이런 일본 제작사의 일본 시장 집중 현상은 올해 TGS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Final Fantasy XV나 드래곤퀘스트 신작 등을 내세운 스퀘어 에닉스를 제외하고, 글로벌하게 인기가 있을 법한 신작 타이틀은 보이지 않았다.


부스의 소형화, 간소화

예전과 달리 각 기업들의 부스가 작고 소박해졌다. 우선 매년 가장 큰 부스를 운영하던 기업 중 하나였던 ‘레벨5’가 빠졌고, 작년 GTA V로 대형 부스를 열었던 락스타 게임즈가 올해 빠진 것처럼, 가끔씩 참여하여 이슈에 따라 부스를 크게 열고 자사 게임들을 홍보했던 회사들도 빠졌다. 매년 대형 부스를 열어 참여하고 있는 양대 가정용 게임 콘솔 플랫포머 Sony, Microsoft와 도쿄 게임쇼의 단골인 일본의 대형 게임 제작사 스퀘어에닉스, 반다이남코, 코나미, 캡콤, 세가 이외에 대형 부스로 참여한 기업은 Gree, EA, 워게이밍즈 정도 밖에 없었다.

Sony와 함께 매년 가장 큰 규모로 참가하여 일본 게임 시장에서의 경쟁 의지를 드러냈던 Microsoft는 예전과 비교하면 무척 소박한 규모로 참가하였다. 일본 가정용 게임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Sony 또한 예전과 같은 화려한 부스와 대형 스크린으로 참여하진 않았다. Sony와 Microsoft뿐 아니라 그 외의 다른 기업들도 예전에 비해서 훨씬 심플한 부스를 차려 참가하였다.
(전체 부스 위치와 규모가 궁금하신 분은 공식 홈페이지의 MAP 정보를 참고하시길)


화려한 부스와 대형 스크린이 사라졌다.

2013년, 캡콤은 몬스터헌터의 발매를 앞두고 거대한 부족 마을의 컨셉으로 부스의 외관을 장식하고 내부 인테리어도 통일했을 뿐 아니라, 4인용 게임 시연대까지 전부 작은 원두막으로 꾸미는 엄청난 부스를 열었다. 하지만 올해 이렇게 익스테리어/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기업은 없었고, 대부분 자사 게임을 대표하는 특징적인 오브제(로보트라든지 인기있는 캐릭터라든지)를 하나 둘 배치하여 분위기를 살리는 추세로 바뀌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대형 부스 기준으로 보면 단 13개의 기업만이 비교적 대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스를 설치하여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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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이 남코의 부스처럼 썰렁한 부스 앞에 큰 모델 하나 떨렁이 많이 보였다.

2013년까지는 스퀘어에닉스, 캡콤, 코에이와 같이 훌륭한 게임 트레일러를 만드는 기업들은 자사의 게임 트레일러만 계속 트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한 영상관을 운영하기도 하였으나 올해는 이런 곳이 한 곳도 없었다. 부스 규모가 작아진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부스에서 트는 스크린 자체의 규모가 작아지기도 했다. 매년 대형 스크린에 게임 트레일러를 틀었던 Sony는, 올해는 대형 스크린을 없애고 중형 스크린을 3개 붙여서 게임 트레일러를 상영했다. <아래 이미지> 물론 여전히 큰 스크린에서 자사의 게임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트는 기업들도 있으나,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그 규모나 수가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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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소니가 대형 스크린 대신 3개의 중형 스크린을 연결하여 Metal Gear Solid V Phantom Pain의 트레일러를 틀어주었다.


시연대가 줄어들었다.

전체적으로 시연대의 수가 예전보다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정확하게 세어보진 않았으나, 세어보지 않고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만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DeNA와 같은 기업들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시연대를 아예 없애고, 이벤트 스테이지와 자사 게임의 홍보 영상을 틀고 기념품을 나눠주는 형태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시연대 만들어봐야 60분 줄서서 대기해서 10분 플레이하는 게 전부일 뿐,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 하지는 못할테니까 어찌보면 이런 접근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되지만, 그 이전에 도쿄 게임쇼라는 행사 자체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반대로 시연대에 사람이 너무 안몰려도 기업 입장에서는 곤란하긴 할 것 같다)


부스 모델이 줄어들었다.

이건 확연히 줄었다. 작년의 Groops 처럼 컴퍼니언모델로 덮어버리겠다는 노골적인 야심을 보이는 회사가 없어진 영향도 있겠지만, 다른 참가 기업들도 컴퍼니언 모델의 수를 줄이고, 자사 직원들이 직접 나온 경우가 많았다. 스퀘어 에닉스의 경우에는 1명의 모델도 나오지 않고 전부 자사 직원들이 안내를 담당하였고, Microsoft의 경우에도 단 2명의 모델이 포토존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게 전부였다. 다른 참가한 회사들도 가족이 함께 오는 행사를 의식한 건지, 대부분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성인 컨텐츠로 흥한 DMM.com의 부스 모델 정도가 노출도가 높은 옷들을 입고 있던 정도였다.

지금까지의 요소들을 종합하면, 부스가 작아지고, 인테리어가 간소해지고, 스크린이 작아지고, 시연대도 줄고, 부스 모델도 주는 등, 무리해서 한마디로 정리해보자면 명백히 ‘돈을 안쓰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절반은 모바일 게임

시작 전부터 도쿄 게임쇼와 함께 열리는 컨퍼런스의 거의 대부분이 모바일 게임에 대한 것이어서. 올해는 모바일에 치중하는 건가 싶었는데, 막상 부스를 돌아다니니 생각 이상으로 모바일이 많았다. 우선 참여 부스 중 모바일 게임 회사의 비율이 높았다. Gree가 2012, 2013년에 이어 참여 기업 중 가장 큰 부스로 참여하였고, 비록 시연대는 없었지만 DeNA도 나름 큰 규모의 부스를 운영하였다.

모바일 게임만을 제작/서비스하지 않는 기존 콘솔 게임 회사들도 모바일 게임의 참가 비율이 무척 높았는데, 모바일 게임 홍보에 가장 적극적인 건 전략자회사인 세가 네트웍스까지 만든 세가였다. 세가 외에도 반다이남코, 캡콤, 코나미 등도 자사의 모바일 게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모바일에 적극적인 스퀘어 에닉스에서는 의외로 모바일 게임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는데, Final Fantasy, Dragon Quest, Kingdom Hearts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IP의 신작들이 나오는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매년 당시의 잘나가는 모바일 게임 회사들이 큰 규모로 참석하곤 했었는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2013년의 Groops와 같은) 올해는 그마저도 없어서, 모바일 게임 전시로 흥했다고 말하기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겅호, 코로프라, KLab, mixi 등 모바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기업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미디어의 관심 약화

도쿄 게임쇼는 이미 신작 공개나 뉴스 발신 등의 의미는 약해졌고, 곧 발매될 게임을 (도쿄에 사는) 일반인 대상으로 홍보하는 전시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 같다. 오히려 굵직한 뉴스나 화제는 니코니코 초회의에서 많이 나오는 것 같고, 일본내 미디어의 관심 또한 그쪽이 훨씬 높다. (초회의는 거의 모든 공중파의 뉴스 프로그램, 시사 프로그램, 아침 정보 프로그램 등 여러 프로그램 돌아가며 소개했으나, 지금의 도쿄 게임쇼에는 누구도 그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해외 미디어들의 관심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IGN이나 다른 게임 미디어에서 TGS 특별 페이지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형 타이틀의 빈자리를 채운 인디 게임

대형 타이틀과 대형 제작사와 대형 이슈가 사라진 곳은 인디 게임과 아시아 국가들의 게임이 채웠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의미있는 변화인데, 거대 부스가 사라진 자리에는 폭이 70cm는 될까 싶은 인디게임 부스가 다닥다닥 붙어서 들어갔다. 또한 아시아관, 대만관, 한국관이 각각 들어서서 그들이 제작한 다양한 게임들을 소개하였다. 아쉬운 점은 아시아관, 대만관, 한국관은 사람이 너무 없어서 가까이 다가서기조차 힘들어보였다.

사람들이 무척 많았던 인디 게임관과는 달리 아시아 게임관은 전반적으로 한산하였다. 참가한 부스들의 태도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한 사람에게라도 더 자신들의 게임을 알리겠다며 불타는 눈빛으로 앞에 나와 서있는 회사의 부스도 있었고, 사람이 오든말든 내일 없는 표정으로 지키고 있는 부스도 있었고, 아직 열지 않은 부스도 있었다. (대체 비즈니스 데이 2일째에도 열지 않은 부스는 뭔가) 

한국 게임관들에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혹시나 다음에 참가를 검토하는 기업이 있을까 싶어 관람자로서 느낀 소감을 하나만 적자면 스크린은 전시할 수 있는 가장 큰 크기의 스크린으로 전시해주었으면 좋겠다. 200여 개가 넘는 부스 중 어떤 게임이 재밌는지 짧은 시간 내에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상인데, 대부분의 부스에서 작은 PC용 모니터를 올려놓은 정도라서 어떤 게임을 전시하였는지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게 어려웠다. 어떤 부스들은 아예 스크린이 없는 곳들도 있었고, 스크린 없이 아이패드만 한 두대 올려둔 부스들도 있었다. 오랜만에 외국에 나가서 자사의 게임을 소개하는 자리니까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무례하게 오지랖 코멘트를 적어 보았다.


가장 인기 있었던 컨텐츠는 Oculus Rift

돌아다니다보면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서 줄을 서있는 곳을 볼 수 있어서 궁금한 마음에 확인을 해보면, 여지없이 Oculus Rift의 시연대였다. Oclus에서 직접 나와서 전시한 곳도 있었지만, 자사 부스와 자사 컨텐츠를 홍보하기 위하여 Oculus Rift를 들고 나와서 설치해둔 부스도 두어곳 있었다. 돌이켜보면 가장 인기 있었던 컨텐츠는 Final Fantasy나 드래곤 볼이 아닌 Oculus Rift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항상 신뢰할만한 견해를 펼치는 신OO 형님은 이번 도쿄 게임쇼에서 유일하게 건진 게 Oculus Rift였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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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람이 좀 많이 몰려있다 싶어서 가보면 Oculus Rift 시연대였다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2014년 도쿄 게임쇼에서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일본 게임의 로컬화가 가속
  2. 모바일 게임이 일본 게임의 주류가 되는 경향
  3. 게임 회사들의 관심이 식음 (불참가하거나 참가해도 돈을 안쓰려고 안간힘)
  4. 게임의 변방에 있던 이들이 눈에 띔 (인디 게임과 Oculus Rift)

도쿄 게임쇼가 ‘일본인들을 상대로하는 신작 체험회’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 해였다.

다음에는 중요한 컨퍼런스들을 정리하여 올려보도록 하겠다. 올해 안에는 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예상외로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나왔었다.

덧.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도쿄 게임쇼 2014에 대해서 궁금하신 것 있으신 분은 가볍게 댓글 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 열심히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