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헤어진 뒤 부르는 노래

록밴드 중에는 ‘보컬도 악기의 일부’로 생각하고, 가사 하나도 안들리게 죽어라 악 쓰는 것 같이 연주하는 밴드들이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가사를 악기의 일부라 생각하며 음악을 듣는 편이라 ‘가사가 참 좋아’ 라는 느낌을 자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외국어 공부를 하며 집중해서 가사가 무슨 뜻인지 들으려하다보니, 최근에는 예전에 비해서 가사가 귀에 들어오기도 하는 편이다.

오늘 좋아하는 노래들을 플레이 리스트에 넣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흘러 나오는 두 곡 사이에 공통점이 느껴졌다.

1. 처량한 노래
2. 남자와 여자가 함께 부른 노래
3. 애인과 헤어진 다음에 부르는 노래

아아, 이 조합은 또 뭣인고

여하간 최근 긴장감 높은 생활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걸 조금 풀어볼 겸, 이 기묘한 조합의 노래들도 소개해볼 겸,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써본다.

대낮에 설거지하면서 들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애인과 헤어진 뒤 부르는 노래’ 두 곡.

1. 이승환 x 김예림 ‘비누’


애인이랑 즐겁게 하하호호 잘 놀다가 헤어져서 멍때리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실수로 한더미 사뒀던 비누가 ‘똑’ 떨어진 걸 보고 부르는 노래

“익숙하게 구부러진 골목을 지나 혹시 만날까
바뀌지 않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진 않을까”

김예림이 부르는 이 가사 부분이 참 좋더라…

“유일하다고 특별하다고 믿었던 게 믿기지 않아”

어떤 사랑이 이렇지 않을까, 싶더라…
게다가 나에게는 이승환이 이별의 아이콘으로 각인 되어 버려서
이런 노래 들으면 왠지 더 슬퍼지는 효과(?)가 있는 것도 같다.

2. 土岐麻子 x 秦基博 「柔らかい気配」
토키 아사코 x 하타 모토히로 ‘부드러운 기척’


‘이런 밴드를 하고 싶다’는 공상을 하게 해줬던 사랑스러운 재즈-록 밴드 ‘Cymbals’ 시절부터 좋아했던 보컬 ‘토키 아사코’의 베스트 앨범을 위해 만들어진 곡. ‘오피스 오거스타’ 소속의 ‘하타 모토히로'(1980년생) 라는 뮤지션이 작곡을 하고 토키 아사코가 작사를 했다.
(위 영상은 전반부 후반부가 짤려 있는데, 플레이리스트로 넣어서 계속 재생된다. 중간에 튀는 건 이해해주시기를)

夏の雨と 秋の影と 冬のサイレン 春に舞うビル風を
胸の中の
君の柔らかい気配
抱きしめて歩いた
忘れたくないと泣いた

여름의 비와 가을의 그늘과 겨울의 사이렌 빌딩사이로 몰아치는 봄바람과
가슴속 어딘가의
너의 부드러운 기척
함께 끌어안고 걸었던
잊고 싶지 않다고 울었어

(중략)

繋いだ指 負けず嫌い
シャツの匂い
笑う一瞬の美しさ
今も残る
この柔らかい気配
君が生きた全ては
確かな永遠だった

살짝 잡은 손가락 지기 싫어하는 성격
셔츠의 냄새
웃을 때 아주 잠깐 짧은 순간의 아름다움
지금도 남아 있는
이 부드러운 기척
네가 살아있던 모든 것은
확실히 영원하구나

이 노래는 애인이 죽어서 헤어진 뒤 부르는 노래 같다.

あの時君は 本当は何を
幸せと感じていたの 分からない
さよなら
でも
この柔らかい気配
まだここで生きてる
確かな悲しみ抱いて

그 때의 너는 사실은 어떤 게
행복하다고 느꼈을까 모르겠어
안녕
하지만
이 부드러운 기척
아직 여기에 살아있어
확실히 슬픔에 쌓여서

내가 번역을 잘 못한 탓도 있지만, 일본의 대중가요의 가사가 문법을 무시하고 단어의 연결을 통한 느낌 전달을 중심으로 하는 몽타쥬 기법과 같은 경향도 있어서, 한글로 번역했을 때의 느낌이 조금 떨어지지만, 어쨌거나 가사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곡.

이 곡의 뮤직비디오가 정말 좋은데, 진짜 좋은데, 유튜브에는 전부 올라와 있는 게 없다 ㅠ_ㅠ 앨범 발매사인 AVEX에서 전반부/후반부 잘라서 올려놓은 게 있어서 그걸 연결해서 올려보았다.

가을도 아닌데 이런 노래 들으며 설거지하는 나도 궁상맞은 것 같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

+ 이야기가 새지만 잠깐 ‘오피스 오거스타’라는 레이블 이야기를 하자면, 이곳은 무척 좋아하는 뮤지션 ‘야마자키 마사요시’ 형님이 소속되어 있는 곳으로 포크록을 하는 뮤지션들이 주로 소속되어 있는 곳이다.

야마자키 마사요시 형님은 비틀즈의 영향을 받은 기하학적(ㅋ) 코드와 곡진행을 특징으로 하는데, (그리고 관서지방 사람(関西人) 느낌이 물씬 나는 가사도) 한국에는 ‘초속 5cm’의 엔딩 곡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로 유명한 형님이다. 왜인지 야마자키 마사요시 형님의 노래를 들으면 자꾸 김현식이 떠올라 아련해질때도 있다.

山崎まさよし、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언제 한 번 야마자키 마사요시 형님의 노래들도 이런 식으로 정리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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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돋는 금요일 오후의 중요한 잡상

날려버린 소중한 오전과 대충 먹은 점심
20대 돋는 넬 음악과 함께 읽은 몇 개의 글과 놓치고 싶지 않은 잡스러운 생각

1) [신년기획-안녕! 대한민국](1회)돌아오지 않는 두뇌들 (전자신문)을 소개하는 어떤 분의 페이스북 포스트

그리고 이 분 댓글로 쓴 아래의 글에 마음이 너무 크게 흔들렸다.

위의 글은 상사의 리더싶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상사의 전문성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director 같은 걸 맡는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윗사람으로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참 견디기 힘든것 같아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디서 줏어들어서 피상적인 이야기를 할때 느끼는 자괴감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 분노, 실망, 좌절 같은 감정이 아니라 자괴감.
지금 이러고 있는 내가 병신인건가 싶은 마음.
삼국지 몇 번 읽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게 전략이 아닌데, 전략이란 게 무늬만 멀쩡한 흥신소가 아닌데, 하는 마음. 그래, 이렇게 빨리 치유될 내상이 아니었지…

2) “우린 영원한 미생?” SK 농구코치 3인방의 희로애락 (이영미 칼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646

이 중 전희철의 이런 인터뷰가 나온다.

전희철 코치는 오리온스-KCC에서 뛰다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SK 선수로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프런트 직원을 거쳐 전력분석원, SK 2군 감독, 그리고 지금의 1군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 (중략)

전희철: 갑자기 생각난 것 한 가지! 은퇴 후 SK에서 프런트로 일하며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제 앞에 20대 후반의 젊은 기자가 앉았는데 제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이런 얘길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전희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유명한 분이란 얘긴 들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시냐? 그렇게 유명한 선수 출신이 기자들 접대나 하고 그러면 마음 편하시냐?’라고 묻는 거예요. 그 얘길 듣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집 앞 주차장에서 2시간 동안 울었어요. ‘아,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구나’ 싶었던 거죠. 개인적으론 농구 밖에 몰랐던 삶에서, 8개월가량 프런트 일을 하며 신나게 일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저란 사람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거였어요. 농구하던 놈이 왜 저걸 하고 있지? 먹고 살려고? 코치 못하니까? 그런 얘기들이 계속 들리는 듯 했습니다. 제 농구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쳐다보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이런 게 우리를 힘들게 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도, 굳이 다가와서 “너 지금 좆밥이거든” 이라고 귓방망이 날려주시는 분들이 꼭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내가 좋으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3) [보라쇼의 판교통신] ‘판교면 개발자, 개발자면 치킨집?’…치킨집 차린 개발자 (마이크로소프트웨어)

http://www.imaso.co.kr/news/article_view.php?article_idx=20150106143524
(이 기사 재밌으니 꼭 함 보셔요들ㅋ)

(전략)

참, 손님들이 신기하게도 정석모 씨를 알아본답니다. 가게에 사장님과 정석모 씨가 같이 있어도, 손님들은 사장님 대신 정석모 씨에게 말을 건넨다고요. 아니면 정석모 씨를 흘깃거리고요. 그럴 때면 정석모 씨가 그 테이블로 인사를 간답니다. “제가 그 사람입니다”라면서요. 인사를 건네면, 안쓰러운 눈빛을 종종 받습니다.​

“대부분 그래요. ‘어쩌다가’ 라거나 ‘왜 개발 안 하고 치킨집 하시느냐’고요. 그러면 ‘이것만 하는 게 아니다. 개발하고 있고, 하루가 즐겁다’고 말씀드려요.”

(중략)

정석모 씨도, 사장님도 대박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저씨, 개발자예요?”라고 카카오톡으로 말을 거는 꼬마 예비 손님들이 가게에 치맥하러 오는 게 정석모 씨가 그리는 미래입니다. 판교하면 ‘거기!’라고 사람들이 떠올리는 가게가 되는 것도 목표이고요.

정석모 씨의 바람은 하나 더 있는데요. 한국에서 개발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겁니다.

“어린 후배들이 사회생활을 할 즈음엔 그 유행어(앞서 언급한 닭 튀김 수렴 공식)가 없어지면 해요. 저는 개발자를 다섯글자로 말해요. 종.합.예.술.인. 개발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종합적으로 많은 직업이거든요. 개발은 상상력을 펼쳐 디자인, 데이터베이스, 서버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취합해서 예술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에요. 창업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직종이고요.”

자신의 일에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 남들이 안쓰럽게 쳐다봐도, 치킨집도 하고 개발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의 나도 언론과 인터뷰하면 일본에서 원하는 일 하면서 즐겁고 재밌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할 것 같다만 어쨌거나)
2)번 글의 전희철도 기자들과 회식한 날 밤, 2시간을 울었지만, 그래도 자기 일이 재미가 있어서, 그 시절에 일도 많이 배우고 지금처럼 강팀을 만들 수 있는 코치가 되었으리라.

이 세 이야기들과 우울한 넬 음악이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건 이런 것 같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사람을 의식해서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결국 그게
‘지금 이러고 있는 내가 병신인가…’ 로 귀결된다는 것.

결국 내가 웃고 살려면 스스로를 무시하고 학대하고 업신여기는 이 짓을 그만해야 한다는 것.

아아 병신짓 그만하고 오후 할 일 하자.

ps. 간만에 네이버 블로그 시절에 쓰던 글 같은 걸 쓰겠다고 카테고리도 새로 추가함ㅋ

ps. 사진은 오랜만에 넬 음악 들으려고 꺼냈던 CD. 넬의 메이저 데뷔 앨범으로, 인디 시절 불렀던 ‘어차피 그런 거’ ‘낙엽의 비’ ‘믿어선 안될 말’ 같은 노래들이 새롭게 들어있는 앨범이라 가장 좋아하는 앨범인데 없어졌다. 어흑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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