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권

“그거 있잖아 그거… 아 그래, 우대권.

야, 알고보면 인생에도 우대권이 있어. 일단 손에 쥐면 망해도 잘되는 거. 꽃놀이패같은 거. 근데 부루마불한다고 매번 나오는 건 아니잖냐. 야, 우린 이번 생에는 우대권같은 거 없는 거야. 그냥 좆나게 지발로 걷고 지힘으로 인생 멱살잡고 끌고 가는 수밖에 없는거야.”

선배는 말했다.
아니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고 기억한다. 선배가 평소부터 수없이 이야기했던 바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말그대로 꿈같은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춘 좋은 기회를 바로 눈 앞에서 놓쳤을 때였다.

“너나 나나 남들이 닦아놓은 길로 좋은차 몰고 갈 팔자는 아닌거야.”

웃으며 말하는 선배의 농담에 씁쓸해하기엔, 이런 류의 농담을 너무 많이 들었다.

“좆빠지게 길도 닦고 차도 구해와서 지가 운전해야하는 팔잔거야. 야, 풀리는 게 어딨어. 그냥 좆된 인생 끝까지 좆이지”

오늘 밤만도 수십번 빠지고 수십번은 났을 좆에게 좆나게 미안해하던 도중 갑자기 대화가 끊겼다.

“선배, 더 마셔?”
“아니 아니 됐어. 나 이런 날 술 별로 안마셔.”
시뻘건 얼굴의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서 계산을 마치고 나갔다.
“뭔 백수가 맨날 술을 사”

나의 핀잔따윈 언제나처럼 들은 척 않고 그는 자기 길을 갔다.

“잘 들어가고 건강해라”

힘든 일을 겪고 코가 비뚤어져라 술을 마신 뒤 헤어질 때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안들으면 괜히 불안해지는 법이라 괜히 한 번 더 물었다.

“잘 들어갈 수 있어? 형수랑 애는 자나?”

뜬금없는 가족 이야기에 불쑥 뒤로 돌아 본 선배는 씨익 웃더니 손을 두어번 휘젓고 제 길을 갔다.
그는 인생의 한 장이 마무리 되는 순간같은 게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적어도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라고 했다.

오십, 육십 살이 되어 보진 않았지만, 그 나이가 되어도 인생 어찌 사는 게 좋은지 모를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래 이런 건 이십 년 전에도 알고 있던 거였지 뭐. 유난히 시작도 늦고 채워지기도 늦는 우리같은 인간이야말로 대기만성이라고 자위하며 나도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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