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슬램덩크는 좋고 원피스는 흥미없는 이유

원피스: 1-31권. 누계 9055.6만부 (출판지표연보 2004)
슬램덩크: 전 31권. 누계 9300만부 (닛케이엔터테인먼트 2000년 7월호)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원피스 슬램덩크 어떤 게 더 재미있나’라는 쓰레드를 보면, 원피스와 슬램덩크의 31권까지의 판매부수가 나와있다. 의외로(!) 31권까지만 본다면, 현재 스코어 지구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 원피스보다 슬램덩크가 더 많이 팔렸다. 출처가 다르니 100% 신뢰하지 않는다고 해도, 거의 비슷하게 팔렸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슬램덩크를 무척 좋아하지만, 원피스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는 슬램덩크는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원피스는 한 때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가 될 것 같다.

그 이유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 전개, 작위적인 카타르시스, 자기복제를 반복하는 갈등 구조 등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캐릭터를 다루는 두 작품의 차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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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의 이유들은 슬램덩크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점들이다.  “난 지금입니다!!” 이건 감동받으라고 만든 구성과 대사이고, 우리는 이 대사에 열광했다.

 

내가 슬램덩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정대만! 불꽃남자!
중학교 전국 MVP였지만 방황에 빠져 저질 체력으로 고생하는 인간미 넘치는 천재!!

반면, 원피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조로다.
웬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루피 등과는 달리 먹을 것도 그리 밝히지 않고 세상 달관한듯 잠을 자는 쿨하지만 뜨거운 남자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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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좀 보내면 머리에 두건만 쓰면 둘이 똑같이 생겼다 (클릭하면 출처로 감)

이 두 사연 많은 조연 캐릭터를, 두 작품은 전혀 다르게 다루고 있다.

슬램덩크에서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 때문에 토너먼트 경기를 이기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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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진짜남자의 슛은 림에 맞지 않고 깨끗히 들어간다

반면, 원피스의 조로는 언제나 적 두목의 졸개들과 싸운다.
가장 강력한 두목은 언제나 루피가 싸움 걸고, 얻어 터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두드려 패고, 훈계하고, 감동준다.
그동안 조로는 그 일파에서 두 번째로 센 놈과 싸워서, 얻어 터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두드려 패고, 루피를 구박한다.

이 패턴이 70권쯤 반복되니, ‘캐릭터를 팔고 있는’ 원피스라는 만화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언제나 조연같은 조연에 머무는 것이 짜증이 나게 되더라. 브레이킹 배드의 악덕(?) 변호사 ‘사울’도 자신의 이름을 딴 스핀오프 드라마가 3시즌째에 접어 드는 세상이라 자신있게 말하긴 어렵지만, 정대만이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건 작가도 독자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대만이나 조로와 같은 특정 캐릭터를 좋아하는 내가 바라는 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 캐릭터 다움을 드러내며,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어느새인가 조로는 루피가 싸우면 한주먹 거리도 안될 것 같은 악당들과 치고 받으며 뒤치닥거리를 하고 있다. 하다못해, 비슷한 롤을 가지고 있던 베지터처럼 언젠가 손오공카카로트을 죽이겠다거나, 가끔은 짧은 순간이라도 손오공카카로트보다 더 강해지거나 하는 장면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스토리의 전개보다 액션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 더 심각해진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3편 정도 보았더니, 조로라는 캐릭터를 내가 왜 좋아했나 의문이 들었을 정도였다.

반면 정대만은, 윤대협이나 이정환도 아니고 서태웅도 채치수도 아니지만, 어느 한순간에서는 가장 뜨겁고 강렬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앤디 워홀의 말처럼 적어도 어느 한순간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는 두 만화가 다르지 읺지만 (슬램덩크에서 각 멤버들을 영입하는 과정과 원피스에서 동료를 영입하는 과정이 무척 비슷하다) 그렇게 한 팀이되어 결국 졸개들만 상대한다는 한계가 원피스의 캐릭터들의 매력을 감소시킨다고 느낀다.

잘만들어진 캐릭터를 내세우는 만화는 독자의 감정이입이 쉬운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어서, 나같은 사람은 120% 몰입하여 ‘그래! 나는 포기하지 않는 남자지! 나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불꽃처럼 스러지는 남자지!’ 라며 즐거워하는데, 캐릭터를 내세워서 팔고 있는 만화에서 캐릭터에 한계를 느끼게 된 것, 이게 내가 원피스에 흥미를 잃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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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책상에는 정대만이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니까.

 

 

덧. 
여담이지만, 가끔 살짝 보게 되는 원피스의 캐릭터들은 감각적인 이미지가 더 먼저 들어오는 패션쇼의 모델같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특징있는 외모(그리고 소품), 특징적인 기술, 적당한 사연들로, 스마트폰 게임의 가챠를 돌리면 나올 것 같은 캐릭터들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 가챠 캐릭터들이 원피스의 캐릭터 제조법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편이 옳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결국 잘만들어진 스마트폰 게임의 캐릭터와 원피스의 각종 열매 능력자들이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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