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022년 3월 20일

일하기가 너무 싫어서 쓰는 잡담 글.

내가 드디어 미친건지, 금요일 밤에 도착한 프라모델을 토요일에 조립했다.
프라모델은 사는 거지 조립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마냥, 사서 쌓아두고 있던 1인으로서, 도착한 신상을 바로 조립하는 게 몇 년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참고로 프라모델을 쌓아두는 것에 대해서는 정식 용어도 있다. 프라탑(나무위키주의), 참고로 내가 노는 카페에는 프라’탑’이 아니라 프라’벽’이나 프라’방’을 만드는 경우도 무척 흔하다)

여하간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이 반다이 1/35 배트모빌 – 1989년 팀 버튼/마이클 키튼 버전이다.

1/35 스케일이라 실제로 보면 아담한 사이즈다

배트모빌이야 항상 좋지만, 그 중에서도 1989년 버전의 배트모빌 (그리고 영화 배트맨)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도 하다.
20세기 영화잡지들은 부록으로 큰 포스터를 주었다. 아마도 일본 잡지들의 영향이라고 생각되는데, 1989년은 내가 잡지 부록으로 나오는 포스터나 브로마이드에 눈을 뜨게 된 해였다.

1989년 7월 영화잡지 스크린의 부록은 앞면은 글로리아 입, 뒷면은 이미연이 나온 커다란 브로마이드였다. (사람에 따라서 앞면과 뒷면의 인식이 다를 수 있지만, 나에게 앞면은 글로리아 입이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이 브로마이드가 너무 가지고 싶어서 나도 스크린을 샀다. 당시는 이미 8월호가 서점에서 팔리고 있던 때였는데, 마침 동네 서점에 재고가 남아 있어서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당시의 나는 나름 가난했어서 (그 이후 10여년간 그 가난함의 정도는 나날이 갱신되어 쌀을 못사는 지경까지 간다) 비디오 데크는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처지였을 뿐 아니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영화 잡지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다.

‘스크린’을 보던 나는 ‘로드쇼’를 샀고, 로드쇼에서 신들린 글을 쓰던 정성일과 구회영은 몇 년 뒤 ‘키노’를 창간하고, 나는 영화를 전공하겠다며 예술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정성일은 이후 다들 아시다시피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비롯하여 여러 매체에서 활약하게 되고, ‘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을 쓰던 구회영은 키노에서 ‘도씨에’를 쓴 이후, ‘김홍준’이라는 본명으로 데뷔작 ‘장미빛 인생’과 인디 뮤지션 ‘윤도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정글 스토리'(아마 다들 신해철의 OST로 기억하실 것 같긴 하지만)를 찍게 된다.
정성일은 정성일이고, 김홍준은 빔 벤더스(베를린 천사의 시), 카메론 크로우(제리 맥과이어, 올모스트 페이모스)와 함께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 감독이다.

여하간 그런 지리멸렬한 10대 중반부터 20세기가 끝나던 20대 후반까지의 시작이 되는 지점이 바로, 1989년 친구네 집에서 우연히 본 글로리아 입 포스터였다. 그리고 그 해 여름이 바로 팀 버튼의 배트맨이 세상에 나온 때였다.

오랜만의 프라모델 조립, 재밌구나.
(옛날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끝나기……)

잡담 2022년 3월 13일

1.
투자일기?

투자 일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였다.
“개인 투자를 하나도 하지 않던 금융회사 CEO의 투자 일기”(제목부터 막 MSG). 무엇을 목적으로 어떤 투자를 시작할 것인가부터 시작하여, 왜 그렇게 투자하고 있고, 수익율/수익금은 얼마나 되는지 등…

아무도 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싶기도 하지만, 개인 투자를 진행하면서 배워나가는 것들이 있어서, 혹시나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여 공유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인 기록도 되는 것도 좋고.

그러다가도 좋은 컨텐츠들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나까지 그럴 필요 있나 싶기도 하여 고민 중…
다른 것보다 데이터 잔뜩 만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레여하는 중… 요즘 엑셀 작업 같은 걸 거의 안(못)하다보니…

2.
유명해지고 싶은가?

얼마전, 이 업계(정의하기가 어렵지만 대충 일본 블록체인 관련이라고 해두자)에서 유일하게 프라이베이트로도 알고 지내는 분이 트위터에서 셀럽 수준의 (팔로워 1만명 넘으면 셀럽인 걸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똑똑하고 야심있고 좋은 배경과 좋은 투자자를 가지고 있는 회사의 Founder이자 CO-CEO인 분이시다.
이 분이 트위터 스페이스에서 사람들과 모여 web3.0에 대해서 논의를 한 것을 다른 분이 도해하여 정리한 것을 가지고 쓴 글을 보았는데, 좋은 인사이트와 적당히 선정적인 워딩에서 개인의 탁월함이 느껴져서 은근히 부럽기도 하였다.

링크드인을 다 날려먹은 이후, 프로필을 다 지우고 딱 한 줄 써두었다. CEO of LINE BITMAX and LINE NFT. 그리고 자주 들어가보지 않고 있는데, 가끔씩 들어가보면 친구 신청도 많이 와있고 메시지도 많이 와있다.

조만간 큰 행사를 진행하는데, 예기치않게 스피커로 나가게 되었다. 원래는 사업부에 맡겨두었는데, 주목도가 크다보니 내가 나가라는 이야기.
내가 나가게 되어 전체적인 원고를 다시 보고 있는데 고민이 많이 된다. 분석가나 기획자가 아니라 사업의 수장으로서 어디까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나 예측 잘할 수 있는데… 점쟁이 소리 들을만큼 정확하게 앞으로의 1-2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거 말고, 미디어 대상으로 우리 사업을 이야기할 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제 밤인가 오늘 아침인가, 어린이가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지난 십수년을 더 인정받지 못하여 발악하고 지랄하고 진상부리던 나는 지금, 그냥 열심히 일해서 월급 받고, 월급 받은 만큼 일하면 되는 삶을 그리워하고 있다.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승진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눈앞의 일만 잘하면 월급 들어오고 60살에 은퇴하는 삶이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나는 진짜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은가?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권한과 더 많은 일에 관여되고 싶지 않은가?

스무번생각하면 그 중 한 번 정도는, 에이- 나도 좀 더 잘나가고 싶지 왜 안그러겠어-, 라는 생각이 들지만, 바로 나의 분수와 주제를 되새기곤 하는 것 같다. 지금 하는 것도 버거워하면서 이 이상 뭔가 되면 큰 일난다 정신차리자 이놈아, 라며 스스로를 질책하는 걸로 끝나는 것 같다. (이 글도 그래서 쓰는 거고)

3.
사람들, 나의 동료들

지금의 회사 멤버들을 보면, 지금까지 내가 지내온 모든 조직 중에서 가장 좋은 멤버들이 모여있는 것 같다. 그들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사업이 더 잘되어야…

결론은 언제나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해야 한다는 게 되지만, 나는 과연 그런 능력이 있는 놈인가 생각하게 된다.

오늘도 하드씽을 읽어야겠다.

무뜬금 잡스 형님. 형님 거기서 잘 지내시나요.. 저 형님네 회사 주주되었어요…

퇴고없이 한 방에 써내려 간거라 무척 불안하지만, 어차피 이 블로그 읽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바로 퍼블리쉬…